철학가- 이처럼 매력적이고, 지적이며, 또한 무릇 사람들에 존경을 받지만, 가난하고, 아무것도 남지 못하는 그 존재에 대해서, 나는 참으로 그렇게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知를 추구하지 않는것은 아니지만, 아니 누구보다 더욱 더 致知를 추구할지도 모르겠으나, 어디까지나 나는 일반인이지, 그 미쳤다는 철학가는 되지 못한다. 나에게 있어서 앎이란 책이란 얇디 얇은 물건에 존재할 뿐이고, 진정한 탐구와 지적 탐구는 철학가들에게 맡겨둔 채, 그 지식을 나에게 떠먹여달라는 식으로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그들의 탐구의 결정체인 책을 읽으면서도, 책을 읽는 그 순간은 나는 소크라테스도 되고, 플라톤도, 공자도, 노자도 되지만, 책을 덮는 그 순간, 그들은 어디갔는지 종잡을 수도 없을 찰나에 원래 나로 돌아오고 만다. 아무런 가감없이 그들의 생각을 탐닉하고, 얻어먹으려고 하지만, 결국 나는 그들이 되지 못한 채, 고스란히 나로 돌아간다. 그렇게 떠나간 공자와 플라톤은, 나에게 있어서 단순한 지식으로 남은 채, 致知가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대학시절 자본론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너무나도 어렵게 쓰여진 그 글 때문에, 정말 짜증을 넘어 화가 난 적이 있다. 왜 이렇게 글을 어렵게 썻는지, 용어란 용어는 죄다 새로 만들어내면서 사용하는건지, 당췌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철학가라는 녀석들은, 일반 대중들을 농간이라도 하려고 하려는 것 처럼 느껴지고는 했다. 어떻게 어떻게 다 읽고는, 다시는 이런 책 따위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들어, 철학가들의 그런 글따위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책이 이해가 되는게 아니라, 책이 어렵게 쓰여진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진정한 탐구의 결과를, 사람들에게 쉽게 떠먹여 주려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 내가 찾아낸 정답이었다. 또 그렇게 쓴다는 것이, 그들의 탐구의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방비책을 마련해 두려는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글은 쉽게 쓰여야 하고, 철학가들이 조금 더 쉽게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오만이었다. 진정한 탐구따위는 하지도 않은 채, 철학가들이 탐구와 탐구 끝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종이 따위에서만 앎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처럼 억지가 어디 있겠는가! 적어도 몇년, 길면 몇십년 넘는 시간이 넘는 그들의 탐구를, 나는 고작해야 몇일 사이에 모두 흡수하려는 말도 안되는 욕심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인스턴트 식으로 앎을 추구하려 하다니, 철학가만큼 탐구하지 못한 내가 철학가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수도 없거니와, 그들의 엄청난 사고체계를 아주 단순한 면에서 보여줄 수 밖에 없는, 불완전한 도구인 '글'을 이용한 책이 그들의 생각을 모두 보여줄 수 있을리도 만무하다. 책은 결국 철학가의 뇌를 1퍼센트도 나타내지 못하며, 나는 그 1퍼센트에서, 철학가의 100퍼센트를 가지고 오려는 과오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진정한 탐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의 시간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할 수 있는 머리도 못된다. 그래서 어줍잖게 철학가를 따라 해 보려고 했지만, 그 조차도 단순히 책에 의존하기만 했으니, 이처럼 겉멋만 든 것이 어디 있겠는가. 개념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공식만 주르륵 모아놓은 수학노트를 보는 것과 같은 것이 바로 독서라는 것이다. 책은 결국 철학가의 아주 단순한, 정리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며, 철학가의 위대한 사상을 책 따위로 알 수 있을리가 없다.
나는 철학가가 되지 못한다. 어줍잖은, 그저 지식만 늘어난, 그런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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