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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28. 21:04 - 덕테

정의로운 사람

  사람이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한번씩 "나는 정의로운 사람인가?" 를 고민하고는 한다. 물론 그 정의라는 것이 관례를 따르는 것인지, 혹은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그런 고차원적인 철학적 논쟁을 이번 글에서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의의 기원이 그 어떤 것이건 간에, 어쨋거나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 판치는 세상에서, 관례가 되었던, 자신의 내면이 되었던, 그 어떤 정의를 따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시기가 되었다.
 
  정의- 한마디로 정의하기도 어렵고, 고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정의도 내리지지 않은, 혼잡 그 자체의 개념이기도 하다. 정의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어떤 시각에서 접근하건 간에, 정의는 또 다른  시각에서의 접근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의의 기원이 관례가 되었건, 인간의 내면이 되었건 간에,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정의는 분명히 존재한다. 불을 끄다가 순직한 소방관들, 자신을 희생해서까지 학생들을 구조했던 세월호 참사의 선생님 등,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정의롭지 못한 사람' 이라고는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렇듯 우리는 정의라는 개념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어디에서 부터인가 정의라는 것을 느끼고, 찾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가장 첫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희생'이다. 누군가를 대신해서 죽거나, 자기를 희생해서 무언가를 이룩하거나,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많은 상징을 준다거나, 어쨋거나 정의에는 희생이라는 이미지가 붙어있다. 격식을 차리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도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욱 강렬한 이미지는 희생이라는 코멘트가 붙어다닌다. 그런 강렬한 '정의'에 매료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정의, 이를테면 힘든 사람을 돕는다거나 따위의 정의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가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경시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옆에 사람을 도아주고,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이는 충분히 정의로운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희생'을 수반하는 정의 때문에, 자기를 정의로운 인간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를 희생하는 일처럼, 이렇게 숭고하면서도 어려운 일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그들이 최고의 정의라고 이야기 해도, 반론을 펴기는 힘들다. 어디까지나 인간은,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가장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를 희생해서까지 '정의'를 이룩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니 그 이전에 정의라는 것이 꼭 희생을 수반한다는 생각까지 하기 마련이다. 정의로운 사람이 반드시 희생을 해야하는 것은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고는 마는 것이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나를 희생해서까지 정의를 이룩할 제목은 못된다.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정의를 이룩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내가 많이 힘들지 않다는 상황 내에서는, 많은 것을 배풀려고 하고, 도우려고 한다. 이정도면 충분히 정의라는 이름을 붙여도 상관이 없을 듯 싶다. 이정도면 충분히 정의로운 사람이다.
 
  우리는 정의의 허들을 너무 높게 잡은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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