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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1. 04:16 - 덕테

천천히 걷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름 느긋한 성격이라는 말을 듣는 나도 조급해지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급하다고 해야할지, 사실은 별로 급할 것도 없는데, 앞뒤 돌아보지 않고 달려나가고만 있다. 조금 일찍 나온 출근길, 신호등 하나쯤이야 기다려도 상관 없지만 그냥 달려가게 되고,  어떻게든 빨리 처리 하려고 밤잠까지 줄여가면서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게임을 한다. 뭐 게임이라는 건 여가생활일지도 모르겠지만, 게임 안에서도 빨리 레벨업을 하려고, 빨리 이벤트를 참여하려고, 빨리 장비를 맞추려고, 어쨋거나 여유를 즐기려고 하는 게임에서도, 조급하게 하려고만 하는 것이다.


  내가 철학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구절이 도덕경에 나오는 이 구절이었다.

企者不立 跨者不行

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

自伐者無功 自矜者不長, 도덕경 24


(발돋움하는 사람은 서지 못하고 껑충껑충 뛰는 사람은 멀리 가지 못한다.

스스로 드러나고자 하는 사람은 밝지 못하며, 스스로 내노라 하는 사람은 빛나지 못한다.

스스로 뻐기는 사람은 공이 없으며,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윗사람이 될 수 없다.)

'발돋움 하는 사람은 서지 못하고, 뛰는 사람은 멀리 가지 못한다.'  이처럼 인생을 잘 요약해 둔 말이 어디 있을까 싶다. 돌이켜 보면 나는 왜이렇게 빨리 달리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조금 늦어도, 조금 여유를 부려도 괜찮은데, 모든 곳에서만 빨리빨리를 하려고 보니, 인생의 사소한 즐거움들을 놓쳐온 것이다. 길을 걸으면서 다양한 건물들과 간판을 볼 여유도 없이, 출근길의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들, 여름밤 더워져서 나온 산책길의 시원함. 그 어느것도, 언제부턴가 나는 즐기고 있지 못했다. 이전부터 좋아해왓던 것들을, 잊어버리면서 살아온 것이다.


 그렇다. 인생 외적인 부분에서, 나에게 빠름을 강요하고는 있다. 세상 사람들은 참 뭐가 이렇게 바쁜건지, 모든것을 빨리빨리 하라고 요구한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나아가기 위해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빨리빨리 모든 것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일까. 그런식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이 세상이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뭐, 경쟁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경쟁, 그 단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과 패기, 젊음은 어떤 단어에 비해 매력적이긴 하다. 물론 그 내면에 숨겨져 있는 반대급부들은 치부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경쟁이라면 신물이 난다. 내 인생은 나름 경쟁의 연속이었고, 지금까지 겪어왓던 경쟁보다 더욱 더 많은 경쟁을 해야 만 하기 때문일까.


사실 천천히 걷지 못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여유를 갖고 하고 싶어해도, 어쩔 수 없이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이라면 자신의 학업성적을 가지고 경쟁을 해야하며, 취업 준비생이라면 자신의 스펙을 다른 지원자들과 경쟁 해야하며, 직장인이라면 직장 내부의 실적으로 다른 동료들과 경쟁 해야만 한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려고 게임만 키더라도, 타임어택을 하거나, 남들보다 레벨을 먼저 올리려고 한다거나... 우리네 인생은 어떻게 해서든지 경쟁과 관련되어 있다. 여가생활 마저 경쟁으로 둘러쌓여 있으니, 더이상 무엇을 이야기 해야할까.


자기를 위한것이라는, 열정의 상징이라는 경쟁과, 그에 맞춰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아름다움이 보이는가?

적어도 나에게는, 흔히 말하는 경쟁의 아름다움 보다는, 여유라는 여유는 모조리 잃어버린 사람들의 한숨소리만이 들려온다.

내일은 천천히 걸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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