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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3. 12:40 - 덕테

아버지

  최근에 들어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참으로 사람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부모가 자신의 부모가 아닌, 한 사람의 남성과 여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매일같이 술을 먹고와서 난동을 부리고, 돈은 한푼도 못벌어오면서 매일 이리저리 손이나 뻗고 다니며 사업하겠다고 나대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아버지라는 말 보다는 병신이라는 소리가 먼저 나왔었다. 내게 있어서 아버지란 가정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그저 혐오스러운 경멸의 대상일 뿐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아버지가 건실한 생활을 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겠지만, 무언가 크게 바뀐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꽤나 어른이 된 것일테다.


  내가 간과하고 있던것은, 아버지 또한 한 사람의 남자였다는 것이다. 술도 먹고싶고, 자기 하고싶은거 하면서 살고싶은, 단지 그 뿐인 한량이다. 어쩌다가 자식을 갖게 되어 결혼을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돈을 벌어 가정을 희생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일 뿐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도 사람이기에, 자기 하고싶은 것들은 모두 하고 싶었을텐데, 자기 능력 치고 그래도 열심히 해서 먹여 살려보겟다고 한 것이 빚만 늘린 일이었고, 자기 딴에는 애정표현을 한다는 것이 술먹고 진상을 부리는 일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참, 누가봐도, 지금 봐도 한심한 인간이다. 돈 한푼 벌어온 적 없이 끌어온 빚만 얼마인가. 그런 주제에 술이라고 하면 그냥 사족을 못쓰는 사람이다. 언제는 우리 집에 보일러 공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내일 마무리를 한다며 인부가 보일러 실을 조금 해체해 놓은 상태였다. 그 덕분에 집은 잠깐 난장판이 되었지만, 어차피 내일 와서 다 청소 해 줄거라고 했기에 나는 그저 알았다고만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술을 먹고 들어와서 그 바닥을 보자마자 주인집을 찾아가서는, 집주인을 폭행하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처음으로 찾아가는 경찰서에서는, 제발 선처해 달라고 빌었던 기억밖에는 없다. 뭐 그것도 지금 와서 생각 해 보면, 자기 딴에는 가족이 이런 곳에서 사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폭행을 휘두르지 않았을까. 물론 그 행동 자체는 지탄받아야 마땅하겠지만서도 말이다.

  몇일전쯤이었나, 아버지 얼굴을 자세히 보니, 꽤나 늙어있었다. 흰 머리는 자욱하고, 얼굴에 주름이 그렇게 끼어있었다. 그래도 나름 한량인지라, 얼굴 하나만큼은 잘생겼었는데, 이제는 그것 마저도 다 없어져 버렸다. 이것이 세월인가 싶기도 하고, 저 인간은 이 나이 돼서까지 이렇게 살려고 하는건가 싶기도 했지만, 어쨋거나 참으로 늙었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생각 해 보면, 이렇게 즐업게 인생을 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자기 하고싶은데로 하고, 자기 치고싶은데로 치고, 그렇게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간 사람이 이 사람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아마 예술가를 했으면 참으로 명작을 만들어 놨을진데, 미술이나 글 솜씨 하고는 전혀 꽝이라 그런가 그저 놀러다니는 것 밖에 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애초에 그정도의 인간일 뿐이지만, 자기 능력 한계에서는 그래도 아버지 역할에 최선을 다해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 딴에는 그것이 열심히 가정을 돌본 것이다. 가장으로써, 한 집안의 남자로써, 자기 능력의 최대한을 쏟아부은 것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정도의 인간인데도,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꽤나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다. 인간으로써 0점이라면, 아버지로써는 한 70점은 주고 싶다.

  아버지는 사람이다.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래도 자기 딴에는, 열심히 한, 그런 평범한 한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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