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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3. 12:39 - 덕테

오오츠카 아이와, 레코드 가게 아저씨

  오오츠카 아이 하면 모르는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사쿠란보라는 노래는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이 꽤나 많을 것이다. 뭐, 지금 여기서 오오츠카 아이의 음악이 어떻고,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어 오오츠카 아이의 음악은, 학창시절 힘들었던 나를 지탱해준 든든한 친구같은 음악이었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중학교때부터 음반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으면 나는 그 길로 동네 레코드 점으로 나가서 음반을 사서 듣고는 했다. 그 당시에는 한창 인터넷이 발달하기 시작헀을 시기라, 음악에 저작권 하나 제대로 없이 마구마구 돌아다니던 시절이었는데 (벅스뮤직에서 거의 모든 음악을 공짜로 다운받고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왠지 음악을 눈에 보이게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냥 그 시절 버릇처럼 음반을 모으고는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아마 음반을 사는 행위를 통해, 이 음악이 진정 내 음악이 되었구나라고 실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제는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 고등학교 1학년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날 용돈을 받아, 의례 방문하는 학교 근처 레코드점을 방문했다. 레코드점 주인 아저씨도 나를 보며 싱겁다는 듯이 웃어주었다. 젊은친구가 뭣하러 아직도 음반을 사서 듣냐고, 그냥 다 꽁자로 들을 수 있는 세상에, 라며 말하시고는 했지만, 그래도 한달에 한번은 꼭 들리는 나를, 단 한번도 반기지 않은적은 없었다. 언제나 올때마다 "그만좀 사고 맛있는거나 사먹어!" 라고 하셨지만, 이내 나에게 어떤 음반이 들어왔고, 어떤 곡이 좋고, 이런이야기를 나누며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수다를 떨고는 했다. 레코드점은 2평정도 되는 작은 공간이었고, 장사는 안 돼서 나 말고 다른 손님이 온 것을 거의 본적은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레코드점을 유지하며 음악을 듣는 그 아저씨의 모습은, 정말로 세상 어떤 사람보다 음악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아무렴 악기를 연주하지 못하면 어떤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면 어떤가. 단지, 노래를 좋아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만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별 다름 없이 방문했던 레코드점은, 뭔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저씨는 여전히 반갑게 인사를 해 주셨지만, 또 매일 하는 구박을 하시긴 하셨지만,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뭐 기우겟지 생각하고, 괜찮은 음반이 들어온 것 없냐고 물었더니, 아저씨는 수입음반이 하나 있다며 한 일본어가 쓰여있는 음반을 한장 건네주셨다. "팔리지도 않는건데, 가져가서 들어. 나는 꽤 좋더라고." 하시며, 굳이 계속 그냥 가져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잘 안팔리는 음반 한장 덤으로 주시려나 보다.' 하고 횡재했다고 생각하고는, 다른 음반 몇장을 구매해서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 가수의 이름은 오오츠카 아이였는데, 참으로 목소리가 고운 처자였다. 처음에 말했던 사쿠란보라는 노래도 참 좋았지만, 나는 1번트랙인 프리티보이스라는 노래가 참 좋았다. 밝은 목소리의 여성이, 밝은 톤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참 좋았다. 물론 다른 노래들이 별로였다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발라드는 발라드대로, 밝은 노래는 밝은 노래대로, 귀여운 노래는 귀여운 노래대로 모두 어울렸다. 말 그대로 천상의 목소리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그녀의 목소리는, 내 귓가에서 살며시 앉았다가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달 내내 그녀의 목소리에 빠져 살았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1일이 되자마자 나는 레코드 점을 다시 찾았다. 이런 좋은 음반을 그냥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해야했고, 왠지 모르게 아저씨가 보고 싶기도 했다. 아저씨와 함께 오오츠카 아이 이야기를 하자. 어떤 노래가 좋았고, 어떤 점이 좋았고, 참으로 목소리가 고운 처자라고, 고맙다고 말하자. 이렇게 생각하고는, 들뜬 설렘을 가지고 레코드 가게로 향해 걸었다.

  하지만 잠깐 기분좋은 설렘도 잠시,  그 레코드 가게의 문은 굳게 닫쳐있었다. 그냥 문을 닫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간판도 없어져버렸고, 건물 안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단지 임대문의라고 커다랗게 쓰여진 종이와 함께 밑에 조그마한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나는 적잖이 당황해 주위 가게에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보니, 5월 2일인가 3일인가 가게를 내놓았다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내 모든 것을 뺴앗긴 기분이었다. 내게 있어서 그 레코드점은, 쉬어가는 공원이었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대화장이었으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콘서트장이었다. 그렇게 소중한, 많은 추억이 담긴 그 레코드점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니, 정말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괜시리 노란색 임대문의라고 쓰여진 종이도 미워졌다. 마치 이 종이가 아저씨를 내쫓고, 가게를 비워버린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서 땅바닥에 내 쳐버렸다. 저 종이의 조각 하나도 보고싶지 않았다. 그런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여느 때 처럼, 아저씨와 이야기 하고 싶고, 여느 때 처럼, 그렇게 음반을 골라서, 여느 때 처럼 그렇게 노래를 듣고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소박한 즐거움조차, 신은 용서하지 않았다. 모조리 빼앗아갔다.

  그 다음에는 괜시리 아저씨가 미워졌다. 물론 아저씨의 잘못이 아니다.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이 었었을 것이다. 손님 하나 없는 가게를 유지할 이유따위야, 어떻게 생각해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 가슴속의 공허함을 달래줄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렇게, 모든 것은 머리속으로 알고 있으면서, 아저씨를 원망해 보았다.

  그러고 몇일이 지났을까, 나는 몇일에 한번씩 그 레코드점이 있던 자리에 방문하고는 했다. 가게는 없어지더라도, 그래도 저 가게가 다른 가게가 되어버린다면, 그것 또한 참을 수 없는 고통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서도, 그래도 나는 그런 나의 나약함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단지, 나의 추억이 담긴 장소가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람 뿐이었다. 아직 건물 안에는 음반이 꽂혀있던 책장도 어느정도 남아있었고, 아저씨가 앉아있던 의자도 남아있었다. 이런 공간이라도 지키고 싶었다. 아주 조금의 시간이라도, 적은 시간이라도 조금만 더 오래 지키고 싶었다.

  이렇게 자주 방문을 하니, 주위 가게 주인들과 몇몇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내게 레코드가게 아저씨에 대해서 여러가지 말을 해주셨다. 좋은 사람이었다니,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라느니, 하는, 그런 미사여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아저씨는 아마 그렇게 인생을 살아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정을 조금 들어보니, 이전부터 아저씨는 조금씩 몸이 안좋은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건강검진을 한번 가보니,  암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물론 초기에 발견한 방광암이기 때문에, 수술은 쉽게 끝날 것 같고, 잘 됐다는 것을 들었다고 이야기 해 주셨지만, 그래도 내가 받은 충격은, 여태 받아온 충격 그 이상이었다.
 
  결국, 나는 그 후로 몇년동안 오오츠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아직도 아저씨에게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가끔 오오츠카 아이의 노래를 들으면, 아저씨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오츠카 아이의 음악을 듣고는 한다. 언젠가 다시 만나 즐겁게 이야기 하고싶은, 조금은 퉁명하면서도, 나의 친구같았던 아저씨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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