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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 25. 02:28 - 덕테

나와 보수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능숙해 진다는 것일지, 아니면 순응하게 되는 것인지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는 없겠지만, 어쨋거나 나이를 먹어가면 먹어갈 수록 새로운 것을 접하는게 점점 어려워 진다는 것을 느낀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해야할까. 구지 딱 한 단어를 찝어 이야기 하자면, '보수화' 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보수'라는 것이, 정치적 색깔을 이야기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부정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변화를 두려워 하는 것' 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변화에 대한 거부감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겠지만, 요즘들어 젊은이들의 뜨거운 마음에 대해서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도 20대 초반시절은, 각종 부조리에 대한 반발감으로 가득 둘러쌓인 사람이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정의와 맞지 않는다면,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싸움부터 걸었던 것 같다. 한때는 교수와 싸운 적도 있었는데, 교수가 마음대로 현장학습 시간을 바꿔버린 탓에, 수업을 뛰쳐나가면서까지 싸웠었다. 물론 막상 생각해 보면, 학점을 포기하는 미련한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쨋거나 그 당시에 나에게 있어서는, 학점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내 마음에 있는 '정의'였다. 내 정의의 맞지 않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던 나도 몇년 전쯤부터 유들유들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는 하는데, 정확히 따져보면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인 것 같다. 어느정도 기반이 잡히고, 적어도 내 코에 풀칠은 할 수 있게 됐을 무렵, 그러니까 나에게도 생산수단이 생기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물론 회사생활에서 온 여러가지 처세술도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은, 가장 큰 이유는 '나의 기반을 포기할 수 없어서.' 인 것 같다. 불의에 대한 뜨거운 마음은, 점차 '나 하나쯤은 어때' 로 바뀌어갔고, 내가 사회구조에 불만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나의 삶의 기반을 통째로 내놓아야 할 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겠지만은, 조금의 불안마저 떨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지고 있으니까, 버릴 수 없게 된다. 이 말이 딱 어울릴지도 모른다. 내가 어느정도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이다보니, 내가 손해를 볼 수 있는 조금의 행동에 대해서라도 거부감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늙어서는 모두 보수화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을 뜻하는 것이었는지,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저번에 있었던 전교조 서명운동은 나에게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정치적 운동에 동참한다는 그 행동 자체가, 그들의 생활기반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도 있는 중대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험을 무릎쓰고 불의에 대해 맞설 수 있다는 것에 왠지모를 눈물이 나왔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변해버렸는가. 왜 나는 그들처럼 뜨거워 질 수 없는 것일까. 왜 나는 이렇게 조심스러워만 하는가. 그들을 보면서 그저 부끄러워 할 수 밖에 없었다.

  점차 치졸해 보이기 까지 하는 내 인생은, 정말 어디까지 옹졸해 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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