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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15. 14:30 - 덕테

고통에 익숙해진 시대

  참 '힘들다.' 라는 말을 하지 않는 날이 없을정도로, 우리네 삶은 너무나도 지쳐있다. 어딜 가더라도 사람들은 모두 '힘들다.'라는 것을 표현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힘들어 하고 있다. 이제는 무엇때문에 힘든지 잊어버리게 될 정도로, 우리는 힘든 것에 익숙해져 있다. 힘든 일 일수록 빨리 잊어야 한다. 이 말이 참으로 딱 맞아떨어지는 시대도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어제도 분명히 힘들었으며, 오늘도 분명 힘들고, 내일도 분명히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힘든 일을 자연스럽게 '잊게'되는, 그런 시대에 도달했다.


  몇몇 사람들은 '굶어 죽을 걱정을 안해봐서 저런 소리를 한다.' 라고 이야기 한다. 뭐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실 굶어죽을 뻔한 적은 단 한번도 없거니와, 나에게 아무리 큰 일이 있어봤자 당장 죽어야 할 상황은 닥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힘든것에 대해서 불평불만 하지 말라는 소리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굶어죽을 경험은 해 본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당하지 않은 상황을 일부러 상정하고, 그것보다는 낫지라고 생각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궤변에 가깝다. 그렇게 따지면, 군인들은 적어도 80년대 미싱하던 노동자들보다는 나을 것이고, 그 노동자들도 적어도 북한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처지가 나을 것이다. 당연히 자신에게 닥친 처지보다 더 심한 상황을 가정하는 것은 정말로 쉬운 일이며, 어떠한 상황이 벌어져도 그 상황보다 최악의 상황은 언제든지 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궤변, 즉 자신이 처한 상황보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짓에 너무나도 많이 익숙해져있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중국보단 낫지, 그래도 우리 대통령이 푸틴보단 낫지, 그래도 우리 회사가 다른 회사보단 낫지, 이런 안이한 생각들이 사회 구성원들 스스로가 누려야 할 너무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든다. 적어도 내가 속한 집단과 상황보다 더욱 더 최악인 집단과 상황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그래도 우리나라가 소말리아보다는 나으니까 정부에 불평불만 하지 말아라.', '그래도 우리 회사가 저기 작은 회사보다는 연봉 많이 주니까 헛소리 말고 일해라.' 처럼, 나의 처지를 경험 해 보지도 못한 상황과 저울질 당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그래도 더 최악인 경우보다는 낫지라는 생각에, 자신이 처한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서 점차 저항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적어도 우리가 더 나으니까 불만 갖지 말고 해라.' 라는 논리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인식 속에 깊숙히 박혀있다.


  어떤 불합리한 일에 대해서, 어째서 더 최악의 상황보다는 낫다는 논리가 자연스러운가? 실제로 우리는 그러한 처지에 살고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최악의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 내 그 늪에 빠져버린다. 지금 처한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래도 괜찮다는 자기위로만 하면서 살고있을 뿐이다. 이런 논리는 결국, 우리들 스스로 당연히 누려야 할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도 그것보단 낫지'라는 생각을 한다면, 세상 어떤 상황이 최악의 상황이겠는가? 이런 생각에 익숙해 질 수록,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서, 힘든 상황에 대해서 점점 '익숙해' 질 뿐이다.


  이런 자기위안은 직장인들에게서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그래도 저것보단 나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회사 내에서 어떠한 불합리한 일을 겪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자기위로를 할 뿐이다. 점차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를 조금씩 잃어가고, 그 상황에 대해서 조금씩 조금씩 자기위로를 하며 익숙해 지고 있는 것이다.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기는 커녕, 누리고 있던 권리마저 조금씩 빼앗겨도, 단순히 자기위로만 하며 자신의 처우와 가치를 점점 더 떨어뜨리고 있다.

   웃긴것은, 이런 궤변이,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태도라며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흔히들 보는 자기개발서를 보더라도, '자신보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 해 더 열심히 하자.'라는 뉘양스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말도 안되는 궤변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것도, 그것을 넘어서 '올바른' 태도로써 여겨지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들이 누려야할 것을 누릴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과연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올바른 삶의 태도인가?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익숙해 져서는 안된다. 우리의 권리를 우리 스스로 지켜나가야 하며, 당연한 권리를 더이상 빼앗기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당연한 권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에 대한 기득권의 횡포는, 전태일이 분신을 했던 그당시와 지금이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비탄이 먼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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