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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 21:18 - 덕테

삶의 형식

  요즘 철학게시판을 달구고 있는 뜨거운 주제중 하나가 바로 이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적 부분일 것이다. 과연 돌고레가 인간과 비슷한 지능과,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돌고래들을 인간과 동격으로 대우 해 주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인간과 돌고래의 차이는 단순히 DNA적인 차이밖에 없는 것인가, 이런 논쟁들이 활발하게 펼쳐지고는 한다. 물론 '인간'이라는 것의 정의를, 말 그대로 사전적인 정의로 하자면 돌고래는 인간으로 볼 수 없겠지만은, 관념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의 정의, 예를들면 언어를 사용하고, 체계적인 사고를 하고, 삶의 형식을 공유하고 있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을 '인간'이라고 한다면, 돌고래를 인간의 범위에 넣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적어도 인간과 비슷한 존재라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논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인간'이라면 공통적으로 가져야 하고, 이것이 있기에 '인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이다. '인간'이라면 무릇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양식, 그것을 비트켄슈타인은 삶의 형식이라고 이야기 했고, 동양에서 그것과 비슷한 의미를 찾아보자면 '예'가 있을 것이다. 

  비트켄슈타인은 한 존재가 하는 말이 다른 존재에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존재가 삶의 형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령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면, 이미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삶의 형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삶의 형식'이고, 다른사람들과 '의사소통'이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삶의 공동체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최소조건으로서, '삶의형식'이 존재하는 것이고, 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응당 가지고 있는 공통된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동양의 '예'라는 개념도 이러한데, 공자는 예에 대하여 논하면서 "예를 잃는 것은 죽는 것이며, 예를 얻는 것은 곧 사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즉, 예의 유무가 인간의 경지와 야만적인 동물의 상태를 구분짓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또 "앵무새는 말을 할 수 있으나 새에 지나지 않으며, 성성이도 말을 할 수 있으나 금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사람이 되어 예가 없다면 비록 말을 할 수 있으나 마음은 금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라는 언급을 통해, 단순히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응당 지켜야 하고, 가지고 있어야 하는 예라는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예'를 행하는 것이 인간이며, 이를 행하지 않는 것은 금수와 다르지 않다라는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형식이 있으며, 이는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삶의 형식'이, 과연 돌고래에게 존재하는가 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데, 돌고래가 인간과 비슷한 삶의 형식, 예를들면 부모를 공경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등의 '예'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인간의 기준과 다른 행위들을 아무런 제제없이 한다면, 그것을 인간으로 보기에는 힘들 것이다. 예를들면 돌고래가 효를 행하며 어려운 돌고래를 돕고, 윗사람을 공경하며 살아간다면, 이를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인간'이라고 규정하기에는 힘들 것이다.

  물론 돌고래를 '인간'이라고 팡단하기에는 이외에도 문제가 많다. 혹은 돌고래가 '인간'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고등생물이지, 인간은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의 지표가 '지능'에 국한된다면, 이는 결국 돌고래가 인간과 같은 위치에 올라 올 수 없는 궁극적인 이유가 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삶의 형식을 공유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며, 단순한 지능으로만 따져본다면, 컴퓨터가 이미 인간보다 고등 생물이라고 하더라도 부정의 여지가 거의 없을 것이다. 돌고래가 '인간'과 같은 경지에 올라오려면, 결국 돌고래는 돌고래로써 존재하는 '형식'이 존재해야 하며, 단순한 지능 계산으로는, 인간과 같은 고등생물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앵무새가 말을 할 수 있지만 인간이 아닌 이유는 곧, 바로 이러한, 단순한 동물적인 본능으로써의 공통점이 아닌, 집단 사유에 의해 만들어진 삶의 공통적인 형식이 인간에게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의 공통적인 형식은 '본능적 공통점'에서 벗어나, 인간이라는 개체의 집단 사유에 의해서 존재하게 된 것으로써, 본능적인 행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예를들면 불륜이라는 개념이 있다. 불륜은 '예'에서 벗어나는 행위인데, 인간의 본능인 성욕을 부정하면서까지 존재하는 '삶의 형식'이다. 즉, 삶의 형식은 본능적인 행동을 부정하면서까지 존재할 수 있으며, 이렇게 본능적인 행위에서 벗어나는 공통의식을 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필수조건이 되는 것이다.

  돌고래에 대해서, 인간과 같은 존재일까를 고려해 본다면, 우선 '삶의 형식'에 대해서 생각 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